1995년 12월 초에 장도미니크 보비는 세계 최고였다. 파리에서 잡지 〈엘〉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프랑스 사교계 최고의 인물들과 어울렸다.
어느 날 오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심한 뇌중풍 발작이 그를 덮쳤다. 그는 즉시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20일 뒤 그는 깨어났다. 의식이 깨어나서 주위를 보고, 사람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팔도, 손가락도, 얼굴도, 발가락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말도 할 수 없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부위가 왼쪽 눈꺼풀임을 알게 되었다. 그곳만 제외하면, 그는 자신의 몸이라는 얼어붙은 감옥에 갇힌 신세였다.
끈기 있는 치료사 두 명의 도움으로 그는 마침내 아주 천천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말이 아니라, 유일하게 움직이는 눈꺼풀을 깜박이는 방식으로. 치료사가 알파벳 글자들을 가장 많이 쓰이는 순서대로 천천히 불러주면, 그는 그것을 듣다가 자신이 원하는 글자가 나왔을 때 눈을 깜박였다. 그러면 치료사가 그 글자를 종이에 적고 다시 글자들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단어 하나당 2분이라는 기가 막히는 속도로 그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끈기를 발휘해서, 잠금 증후군을 겪고 있는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쓰기까지 했다. 그의 몸이 처한 상태와 달리 그 책의 문장은 유창하고 우아했다. 그는 바깥세상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지 못하는 고통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예를 들어, 비서의 가방이 반쯤 열린 채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고통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호텔 열쇠, 지하철 승차권, 100프랑 지폐를 보며 그는 영원히 잃어버린 삶을 다시 떠올렸다.
1997년 3월에 그의 책이 출판되었다. 《잠수종과 나비》라는 제목의 이 책은 발매 첫 주에 15만 부가 팔려 유럽 전역의 베스트셀러 1위가 되었다. 보비는 책이 출간되고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수많은 독자가 책을 읽으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물을 떨어뜨렸다. 거대한 살덩이 로봇을 성공적으로 조종하는 제어센터가 있다는 것, 그 센터의 솜씨가 워낙 뛰어나서 우리는 그 엄청난 작업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 이런 단순한 기쁨을 그들은 아마 생전 처음으로 제대로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보비는 왜 움직이지 못했을까? 보통 뇌가 팔이나 다리를 움직이겠다는 결정을 내리면, 일련의 신경활동이 일어나 척수에 있는 데이터 케이블을 거쳐 말초신경으로 명령을 내려보낸다. 그러면 뇌에서 보낸 전기신호가 전환되어 화학물질(신경전달물질)이 풀려나고, 그 결과 근육이 수축한다. 하지만 보비의 경우에는 신호가 결코 뇌를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그의 근육도 뇌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미래에는 손상된 척수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만약 우리가 보비의 눈 깜박임 대신 뇌의 스파이크를 측정할 수 있었다면 어떨까? 그의 신경회로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어 그들이 근육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면? 그리고 다친 부위를 우회해서 근육이 실제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었다면?
보비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에머리대학의 연구팀은 잠금 증후군 환자인 조니 레이에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심었다. 그리고 조니는 단순히 머리로 상상하는 것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움직이는 법을 터득했다. 그의 운동피질은 손상된 척수를 통해 신호를 전달할 수 없었지만, 인터페이스가 그 신호를 듣고 컴퓨터로 전달해주었다.
몸이 마비된 전직 미식축구선수 맷 네이글은 의수를 어설프게나마 움직여 주먹을 쥐었다 펴고, 불빛을 조절하고, 이메일을 열고, 비디오게임 ‘퐁’을 하고, 화면에 원을 그리는 법을 2006년 무렵 터득했다. 맷이 이런 동작을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100개의 전극이 있는 4×4밀리미터 전극판이 그의 운동피질에 직접 이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근육을 움직이는 상상을 하면 운동피질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연구팀은 그 활동을 탐지해서 그의 의도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조니와 맷에게 사용된 기술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임시변통이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증명해주었다. 피츠버그대학의 신경과학자 앤드루 슈워츠는 2011년에 연구팀과 함께 거의 진짜 팔만큼 섬세하고 유연한 로봇 팔을 만들었다. 잰 쇼이어만이라는 여성은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병 때문에 몸이 마비된 상태였는데, 이 인공 팔을 움직이기 위한 신경외과수술을 받겠다고 자원했다.10 이제 잰이 팔의 움직임을 상상하면, 로봇 팔이 그대로 움직인다. 로봇 팔이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어도 결과는 똑같다. 그녀의 뇌와 기계를 연결한 전선다발을 통해서 그녀는 로봇 팔이 유연하게 방향을 바꿔 뭔가를 잡게 만들 수 있다. 오래전 자신의 팔을 움직일 때와 기본적으로 똑같다. 사람들이 팔을 움직일 생각을 하면, 운동피질의 신호가 척수를 타고 말초신경으로 내려가 근육섬유에 전달된다. 잰의 경우에는 뇌에서 나온 신호가 다른 경로를 따라간다. 근육과 연결된 뉴런이 아니라 모터와 연결된 전선을 타고 흐르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팔을 사용하는 잰의 솜씨가 점점 나아진다. 기술이 발전한 덕분이기도 하고, 그녀의 뇌가 이 새로운 팔을 제어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회로를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 자전거와 반대인 자전거, 서핑보드, 엘런 리플리의 로봇 수트의 사례와 똑같다.
잰은 이렇게 말한다. “다리보다는 뇌를 갖는 편이 훨씬 더 낫다.” 뇌가 있다면 새로운 몸을 만들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불가능하다.
현재 몸이 마비된 사람들이 전신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뇌-기계 인터페이스가 활발히 개발 중이다.
데이비드 이글먼. (2022).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김승욱, 역). 서울: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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